이제는 평화촛불을 들어야 할 때

원익선 원광대 정역원 교무

내가 대학 1학년이던 1984년 11월 유엔총회는 ‘평화권선언’을 하였다. 그 원칙은 ‘지구상 모든 인류는 신성한 평화권을 갖는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평화롭게 살 권리를 말한다. 이에 근거하여 2010년 10월 국제평화권대회에서는 ‘산티아고 평화권선언’을 채택했다. 여기에는 평화권의 요소로 12항목의 권리, 1항목의 의무를 적시하고 있다. 몇 가지 권리를 소개하면 ‘3절 인간안보 및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살 권리, 5절 불복종과 양심적 거부의 권리, 6절 저항과 억압에 반대할 권리, 7절 군축에 나설 권리, 8절 사상·견해·표현·양심·종교의 자유’ 등이 있다.

평화권의 권리와 의무 조항은 인류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특히 한반도에 가장 절실하게 요청된다. 가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질문한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셈인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럴 경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감옥의 규칙에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단식이라도 해서 내가 무죄임을 호소해야 하는가. 답은 다양하다. 내가 유도하고자 하는 쪽은 후자다.

[사유와 성찰]이제는 평화촛불을 들어야 할 때

우리는 왜 평화를 원하는가. 전쟁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지옥의 고통은 다 맛보았다. 식민지도 분단도 외세에 의한 것이다. 참전 경험에 기반한 소설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을 저술한 베트남 작가 반레는 말한다.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외국의 군대가 들어와서 사람을 죽이기 때문에 전쟁터에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총을 들고 다시 싸우겠다고. 이것은 저항이다. 평화로운 마을, 평화로운 이웃, 평화로운 자연을 지키기 위한. 평화의 권리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땅에서도 이 평범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이 스러져 갔던가.

작년 한 해, 아니 지금까지 우리는 전쟁과 평화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행여 전쟁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반도 위쪽에서는 탄도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이 연이어 일어나고, 바다 건너에서는 화염과 분노, 외과적 타격 운운하면서 전쟁의 트라우마를 환기시키는 말의 폭격을 해댔다. 한반도의 백성이 무슨 죄가 있는가. 세계 모든 전쟁을 뒤적여보라.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전쟁 후에도 살아남아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온갖 궤변을 늘어놓는다. 왜 전쟁이 일어나야 하는지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만 죽어간다. 김동춘은 <전쟁과 사회>에서 자료를 통해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농민들은 국군이 지나가든 인민군이 지나가든 짓던 농사일에 열중했다고 한다.

정당한 전쟁은 없다. 인류는 유사 이래 정당한 전쟁을 윤리적으로 정착시키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이유는 보복의 악순환 때문이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기 때문에 전쟁은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김정은과 트럼프의 소위 세기의 악수, 세기의 담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희한하게도 세계 군비의 반을 쓰는 나라에서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 묵은 원한을 풀고자 하기 때문이다. 물론 외국에서 공부한 패기 있는 젊은 지도자가 세습한 노련함과 마주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계산에 강한 트럼프가 헤겔이 말하는 세계사적 개인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세계정신을 역사적으로 실현하는 이성의 하수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하수인이 아니라 역사의 주체자다. 촛불혁명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남북 정상이 ‘월례회담’처럼 만날 수 있으며, 전쟁의 당사국이 만나 종전선언이니 평화협정 체결이니 하는 말이 나올 수 있겠는가. 광화문촛불은 무혈혁명이다. 그렇기에 더욱 값진 것이다. 이 무혈혁명은 이제 평화의 혁명으로 승화되고 있다. 지금까지 남의 땅을 침략해서 그 땅의 주인을 괴롭혀본 적이 없는 원래 평화의 백성 아닌가. 그렇다면 이 기세를 몰아 세계평화의 주역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한반도만의 평화가 아니다. 동북아시아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 모든 인류의 평화다. 그것이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며, 진리나 도로써 세상을 다스린다는 홍익인간이며 재세이화의 구현이다.

이제부터는 작은 욕망을 큰 욕망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 국을 틔워 마을 전체를 한 집안으로 보고, 세계 전체를 한 나라로 보는 대국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 물고기가 변해서 용이 되는 어변성룡(魚變成龍)의 정신적 지도국이 되기 위해서는 한류처럼 세계 곳곳에 평화를 심는 실천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선동한다. 이 땅의 백성들이여, 먼저 평화의 촛불을 들자. 이 촛불이 평화의 횃불이 되어 한반도를 밝히고, 대결과 전쟁으로 지새우는 인류의 집단적 무지마저 불태울 때까지. 나부터 오늘 저녁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 하나 살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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